2018년, 나는 8축 와이어 벤딩 머신 “프리스타일(FreeStyle)”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었다. PLC도, HMI도, 모션도, 고객 대응도 전부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올린 글 중에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고, 가장 많이 막혔던 프로젝트다.
| 항목 | 내용 |
|---|---|
| 프로젝트명 | FreeStyle — 8축 와이어 벤딩 머신 |
| 기간 | 2018년 개발, 2019년 초까지 수정 |
| 제어기 | B&R Automation PC910 (파워링크) |
| 축 구성 | 회전·이송·투피드·클램프·벤드·푸시·수평·수직 8축 서보 + 히터 4계통 |
| 고객 | 미국 소재 업체 — 영문 이메일·현지 출장으로 협의 |
혼자 처음부터
업무일지 첫 줄에 내가 스스로 나눠 놓은 순서가 있다. 환경설정, IO 매뉴얼 프로그램, 히터 매뉴얼 프로그램, 모션 매뉴얼 프로그램, UI 작업, 자동 프로그램, 알람 및 예외처리, 파일·레시피·로그, 그리고 야스카와 로봇 프로그램. 마지막 항목 옆에는 (0%)라고 적어 놓았다. 그때는 로봇 연동까지 갈 길이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터치스크린 HMI로 레시피를 짜서 와이어를 굽히는 기계였다. 스텝 하나에 회전·이송· 클램프·벤드 같은 축들의 목표값을 넣고, 그 스텝을 순서대로 이어 붙이면 하나의 형상이 나왔다. 이 구조를 화면 설계부터 PLC 로직까지 혼자 짰다.
레시피가 20개에서 막혔다
고객이 보내온 수정 요청 목록 맨 위에 이런 게 있었다. “21번째부터 40번째 스텝이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21~40번을 고치면 1~20번도 같이 바뀐다.” 레시피 한 줄에 쓸 수 있는 스텝을 20개로 잡아 놓은 내 자료구조의 한계였다. 100개까지 늘려 달라는 요청에 나는 이렇게 답을 적어 뒀다.
단순노동이라 쉽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
쉽다고 적어 놓고도 실제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복사·붙여넣기도, 스텝 삽입도, 되돌리기(undo)도 없는 화면이었다. 고객은 반복되는 동작을 매번 손으로 새로 입력해야 했다. 그가 요청한 기능 하나하나가 지금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때는 그 당연한 것들을 하나씩 다 만들어야 했다.
말이 안 통해서 더 어려웠다
기술보다 더 힘들었던 건 요구사항을 읽는 일이었다. 고객은 영어로 스크린샷과 함께 길게 적어 보냈고, 나는 그 밑에 한국어로 답을 달고 다시 영어로 옮겼다. 수정 목록에는 내가 그때 적어 둔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당신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 생각에 다음 미국출장 때 대화하면서 이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업데이트해야
될 것 같다.
같은 문장이 목록 안에서 세 번 반복된다. 화면 캡처와 화살표만으로는 안 풀리는 요구가 있었고, 그런 항목은 결국 출장을 가서 기계 앞에 같이 서야 풀렸다.
헬릭스
고객이 만들고 싶어 한 형상 중에는 나선(helix)이 있었다. 그가 보내온 문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하나는 파라메트릭 방정식으로 나선을 통째로 계산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굽힘을 짧은 구간으로 잘라 이어 붙이는 방법이었다. 후자를 택하면 이송량과 굽힘각을 단순한 값 몇 개로 넣을 수 있었지만, z축은 이 계산에 들어가지 않았다. z축은 사람이 손으로 움직이거나, 나중에 로봇이 맡아야 하는 몫이었다.
평면 위의 수학은 고객이 직접 풀어서 보내 줬다. 그 수식을 기계가 이해하는 스텝 값으로 바꾸는 일이 내 몫이었다. 로봇이 z축을 대신하는 날은 이 프로젝트 안에서 오지 않았다.
PLC도 HMI도 모션도 혼자 배워 가며 만들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고객과 문서를 주고받으며 요구사항 읽는 법을 배웠다. 그 몇 달이 지금 내가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 겁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